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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연구소

재미있는 한국사 인물 - 강희맹(姜希孟 ) - 관곡지(官谷池)

by 정보문지기 2020. 12. 6.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올 때,
南京에 있는 전단지에 들러 당시 국내에 없었던
전당홍(錢塘紅) 이라는 새로운 품종의
연꽃씨를 들여와 처음 심었던 곳이라고 한다.
錢塘紅은 흰색 바탕에 끝부분이
옅은 붉은색을 띄는 연꽃

 

 



선생의 사위였던 안동권씨 화천군파 권만형 선생 가문으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함.

상속이 딸에게 되었던것 같은데 조선왕조 통치의 기틀이 되는 경국대전에  상속은 적처의 소생일 경우 장자, 차자, 딸의 성별 구별없이 모두에게 같은 양의 재산을 분배하고 그 가운데 제사를 지내는 자식에 한해서 상속분의 5분의 1을 더해 준다고 되어 있다.

관곡지란 명칭이 사용하게 된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벼슬(베실)’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를 ‘직(職)’에서 ‘관(官)’으로, ‘구지(고지)’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는 ‘곶(串)’에서 ‘곡(谷)’으로 바꾸어 표기함에 따라  ‘관곡지(官谷池)’란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강희맹의 자(字)는 경순(景醇)이며 진주(晉州) 사람이고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다.                

성품이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독서를 좋아하여 한 번 보면 곧 기억하곤 하였다.                 


나이 18세에 생원시(試)에 합격하였으며,정통(統)정묘년 가을에 문과(文科)의 제 1등으로 뽑히어 종부 주부(宗簿主簿)에 임명되었다.
                 
경태(景泰)경오년에 예조 좌랑(禮曹佐郞)에 전임,  돈녕 판관(敦寧判官)을 거쳐, 계유년에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 옮겼다가, 을해년에 직집현전(直集賢殿)에 제수되었다가 이내 병조 정랑(兵曹正郞)으로 올렸으며, 병자년에 동첨지돈녕부사(同僉知敦寧府事)로 승진하였다.                 


성화(成化) 무자년에 남이(南怡)가 죽음을 당하고 예종(睿宗)이 논공(論功)하며 유자광(柳子光) 등에게 익대 공신(翊戴功臣)의
호를 내렸는데, 강희맹은 처음에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나 글을 올려 스스로 그 공을 열거하므로 3등에 올리고  진산군(晉山君)에 봉하였다.                  

 



얼마 안되어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제수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세월이 흘러 연못에 수초가 무성하고 황폐해졌는데 헌종 10년 1844년에 안산군수로 부임했던 권용정이 선조들의 고사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듬해 봄 장정들을 동원하여 연못을 준설했다고 한다.

평소에 농학에 관심이많았는데,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중국에서 연꽃이 아름답게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연꽃씨를 얻어 와서 지금의 시흥땅연목에 심었는데, 처음 연못에 연꽃을 심은 곳이라 하여 관곡지라 부른다 합니다. 

조선시대 때는 임금들이 연꽃에 관심이 많아관곡지 연못에 연꽃를 지키는벼슬아치를 두기도 했는데무려 6명이라 연못을 지켰다 합니다.

나중에 강희맹의 호를 따서 연성이라불렀답니다 처음에는 연꽃을 조금 심었다 합니다.

그러다 지역에 토질 특성상 연꽃 재배가 맞아서 나중에는 차츰 재배 면적을 넓히게 되었다 합니다. 관곡지라는 지명은 처음 강희맹이 연꽃을 심은 곳을기리기 위해 갖가지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시흥 연성에는 수만평의 땅에 연꽃이 피어 있다.경기도 시흥의 연성에는 강희맹을 기리기 위해묘도 재 단장을 하는등 문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姜希孟 1424~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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