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에 동전이 붙으면 죽게 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원문 수록 일사유사(逸士遺事)
조선 말기 중인출신의 시인 정지윤(鄭芝潤) 에 관한 이야기.
문헌설화는 《일사유사(逸士遺事)》에 전하며, 구전설화는 그의 활동지역이었던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수원 · 의정부 등 중부지방에 분포되어있다.
최근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한
야담과 야사집을 통해서 다른 지방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술과 이야기,
시문과 풍류를 즐긴 그는 당대의 문인 · 정치가로 이름을 떨친 명사들과 교우하면서 그들의 허위와 부정을 풍자한 일화들이 많은데, 주로 양반관료들의 부정축재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많다.
부정한 돈은 술로 씻어야 한다면서 늘 술에 취하여 있었다. 가깝게 지내던 조두순(趙斗淳)의 잔치에 초대받은 정수동이 솟을 대문을 들어서니, 사람들이 어린애가 동전 한닢을 삼켰는데 창자에 동전이 붙으면 죽게 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이때 그가 나서서 사랑에 모인 대감들이
들으라는 투로, “걱정할 것 없네. 아랫배만 슬슬 쓰다듬어주면 그만일세.
어느 대감은 남의 돈 몇 만냥을 삼키고도
배만 쓸고 있으면 아무일 없는데,
까짓 제돈 한닢을 삼키고야 무슨 배탈이 나겠는가!“ 하고 소리를 쳤다.
대감들이 이 말에 흠칫하였으나,
이윽고 술잔이 돌고 유흥이 무르익자 조대감이 좌중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느 대감은 호랑이라 하고 도둑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대감이 나서더니,
”양반의 호령 한마디면 호랑이도 잡고 도둑도 잡을 뿐 아니라, 양반네의 명령에 누군들 꿈쩍하겠소,
그러니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이 양반이오.“
하며 좌중을 둘러보자,
잠자코 있던 정수동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를 탄 양반도둑입니다.
가슴에 호랑이(옛날의 호패)를 달고 온갖 도둑을 자행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삼천리강산을 망치니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소!“
라고 하여 좌중을 숙연하게 하였다.
구전설화는 수편에 지나지 않으나
야담집과 야사집에 20여편의 유형이 전하고 있다. 정수동은 하농민인 방학중과는 달리 당대의 최고지배층과 교분을 나눌 정도로 학문이 높고 지체도 상당했지만 이들에 영합하지 않고 비판하며 관직에도 오르지 않았다.
따라서 정수동설화는 지배층의
위정을 풍자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당대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및 풍자문학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수동鄭壽銅
이명 자 : 경안(景顔)호 : 하원(夏園)
출생 - 사망 1808년(순조 8) ~ 1858년(철종 9)
본관 동래(動來)
시대 조선 후기
직업 위항시인
관련인물 김흥근, 김정희, 조두순
조선 후기 때의 위항시인.
왜어역관(倭語譯官)의 가계에서 출생.
본관은 동래(東萊). 본명은 지윤(芝潤).
자는 경안(景顔), 호는 하원(夏園).
태어날 때 손바닥에 수(壽)자의 문신이 있었고
이름 지윤의 '지(芝)'가
《한서(漢書)》에
'지생동지(芝生銅池)'로 있다고 하여
동(銅)자를 따서 수동이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아들 낙술(樂述)은
《역과방목(譯科榜目)》에
이름이 올라 있는 역관이다.
정지윤은 생업을 돌보지 않고 세상을 떠돌아 다니기 좋아했으므로 극도의 가난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제모순에 불만을 느낀 나머지 평생을 광인처럼 행세하였으나
그 언동에는 날카로운 풍자가 깃들어 있었다.
본디 규율적인 생활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평생
포의식객(布衣詩客)으로 만족하였고,
두뇌가 명석하여 아무리 뜻이 깊고
어려운 문장도 한번 훑어보고는 그 요지를 깨달았으나 모르는 것처럼 겸손했다고 한다.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서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에 관련된 허다한 일화들이 유포되어 '기발한 익살꾼 정수동'으로 유명하였다.
시풍은 권력이나 금력에 대한 저항 속에 날카로운 풍자와 야유로 일관하고 있으며,
시를 짓는 것은 구속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하여 "성령이 한번 붙으면 붓끝을 다할 따름이지, 시체나 신풍을 좇거나 교묘하고 섬세한 것을 다투지 않는다."는 성령론(性靈論)을 구현한 시인이다.
번거로운 문장이나 허황한 형식을 배격하고,
간결한 가운데 높은 격조를 담은 시를 썼다.
최성환은 그의 시를 일컬어 고법(古法)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고법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평하였다.
그의 시는 기발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다
자연스럽게 일가를 이루고 있다. 술을 좋아했으며, 김흥근(金興根) · 김정희(金正喜) ·
조두순(趙斗淳) 등 명사들과 교분이 두터웠다.
그들이 그의 재주를 아껴 도우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50세에 과음으로 인하여 죽었다.
저서로는 《하원시초(夏園詩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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